감샤합니다
딸네가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내외가 직장에 가야되니 아이 봐 줄 사람이 없어서란다.
큰손녀가 일곱 살, 작은손녀가 갓 두 돌 지났으니 아직 천지를 모르는 때다. 늙어서 애보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들 한다. 옛말에도 ‘밭맬래 애볼래’ 라는 말이 있다. 애 보느니 차라리 뙤약볕에서 밭 매는 게 낫다는 말이다.
아이들 오기 전, 우선 위험한 게 없는지부터 살폈다.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 구멍을 막고, 부딪치기 쉬운 탁자 모서리도 모두 찾아 스펀지로 싸매었다. 새내기 함미 할비는 그것 말고 무얼 더 준비해야 할지 몰라 속수무책으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아이들이 온 첫날부터 집안은 왁자지껄 공연장이 되었다.
병원놀이할 때는 함미 할비가 주사를 몇 대씩 맞아주어야 되고, 마트놀이할 때는 물건을 잘 팔아주어야 된다. 그런 일은 늙은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이 될 수도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천방지축으로 뛰는 춤은 14층 전체가 흔들린다. 13층에 호랑이 할머니가 산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바닥에 두꺼운 매트를 깔았지만 거실 전체를 다 덮을 수는 없다. 매트 용도도 모르는 아이들이, 안과 밖을 구분 하겠는가. 심심하면 매트를 들쳐 올려 바닥에 탁 놓으면 집전체가 울린다. 까치발로 다니라고 하면, 한동안 발을 들고 다니다가 그 동작이 재미있다고 팔짝팔짝 뛰는 바람에 더 시끄러워진다.
13층 할머니한테서 밤낮으로 문자가 온다.
“해도 너무합니다.”
문자에 서툰 함미가 답장을 못해 쩔쩔 맨다. 할 수 없이 내가 답장을 눌러준다. 아래층 할머니의 마음을 누그러트릴 말이 무엇일까 늘 고민이 되지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문자를 보냈는데도, 세상모르는 아이들은 더 날뛴다.
관리실에서 층간소음 조심하라는 방송이 수시로 나온다. 13층에서 의뢰한 것이 아닐까 마음이 쓰인다. 뉴스에서 층간소음 사건이 보도 될 때는 가슴이 철렁거린다. 함미는 맛난 음식을 할 때나, 밭에 다녀 올 때마다 13층 할머니를 달랠 궁리를 한다. 애호박도 보내고 오이도 보낸다.
요즘, 큰손녀는 유치원에 보내고 작은 손녀는 어린이집에 보낸다. 낮 시간엔 괜찮은데 저녁이 문제다. 13층 아들이 일찍 들어와 자는 시간이라고 하여 더 신경이 쓰인다.
어린이집 신입생인 작은 손녀 태연이는 누구를 만나도 인사를 잘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도 언니 오빠라며 손을 흔든다. 어른들에게는 90도 배꼽인사를 한다. 청소하는 할머니는 물론 택배 아저씨에게 까지 공손히 인사를 한다. 어린이집에 적응도 잘하고 배운 건 잘 따라한다.
어린이집에 손녀를 데리러 갈 때가 가장 즐겁다. 선생님들은 태연이가 붙임성도 좋고 쉬도 잘하고 응가도 잘한다고 칭찬이 대단하다
“태연이는 우리 어린이집 비타민이에요.”
태연이는 어느새 함미할비에게도 비티민이 되었다.
태연이가 밖에서 들어오면 할비를 찾는다. 손을 씻어 달라고 화장실로 잡아당긴다. 잡은 손이 행복하다. 짜르르 전기가 흐른다. 어떤 연인의 손이 이렇게 따뜻했던가. 키가 작아 세면기 옆 부뚜막 같은데 올려 달라고 한다. 비누는 자기가 묻히겠다고 한다. 어린이 집에서 배웠는지 손깍지 끼고 문지르고, 손가락 하나하나 꼼꼼히 씻는 모양이 어른보다 낫다. 발도 씻겠다고 세면기에 발을 첨벙 담근다. 발에도 비누칠하여 발가락 사이를 문지르면 “아이 간지러”하며 좋아한다. 모든 걸 적극적으로 하려는 태연이가 대견하다. 하지만 층간 소음만큼은 대책이 없다.
어린이집에서 태연이를 데리고 오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13층 할머니와 딱 마주쳤다. 손녀와 호랑이할머니의 첫 대면이다. 할머니도 놀랐는지 주춤했다.
“머시기 요녀석이냐…”
하는 찰나에 태연이가 90도로 절을 했다. 아주 공손히 그것도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들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야무지게 한마디 했다.
“감-샤합니다!”
할머니의 입이 벌어졌다.
그 후부터는 할머니의 문자가 없어졌다.
방송도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