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자!!”
김포에 사시는 이모로부터 김장하자는 호출을 받았다. 내겐 어느 행사보다 중요한 연중행사 중에 하나다.
만사를 제치고 퇴근 후 이모 집으로 달려갔다. 맛있는 김치 하나면 한겨울이 두렵지 않기에 기꺼이 돕고 김치를 챙겼다.
그리고 조심스레 “김치 감사합니다.” 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이모는 됐다며 받지 않으셨다. 해마다 반복되는 모습이지만 받아주셔야 내 맘이 편할 텐데 받지 않으신다. 올해는 받으시려나 싶어 또 준비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다시며 말씀하신다.
“형부가 돌아가시면서 널 잘 부탁한다고 했어. 내가 약속했다.”
생각지 못한 이모의 말씀이셨다. 아빠의 부탁?
17년 전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갑작스레 발견된 위암으로 치료 중이셨던 아빠! 하지만 전화하면 늘 괜찮다고만 하셨다. 난 그 말을 믿고 싶어서인지 괜찮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이모 가족과 함께 아빠도 뵐 겸 시골집에 갔다.
그런데 아빠의 모습은 너무도 힘겨워 보이셨다. 가까이 있지 못한데 아프다면 걱정한다며 말씀하지 않으셨단다. 갑작스레 우리가 나타나니 너무 반가워하시며 그날 저녁 가족들을 모이게 하셨고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시고 들리지 않은 낮은 목소리로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으시더니 조용히 하늘 여행을 떠나셨다.
아프단 말씀 한 번 안 하시고, 아직 어린 막냇동생을 남겨 둔 채 준비되지 못한 우리를 떠나버린 아빠가 나는 너무 미웠다. 아마도 갑작스레 나를 덮친 큰 슬픔 안에서 버티기 위해 선택한 나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슬퍼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나를 떠나버린 아빠를 미워하며 버텼다. 난 끝까지 아빠의 철없는 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 날 사랑하는 아빠의 모습만으로 존재했다.
이젠 나도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아빠의 마음이 자연스레 읽어진다.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얼마나 아파하셨을까?
“아빠~ 제가 아빠 맘 몰라줘서 많이 서운하셨죠? 죄송해요
아빠가 저를 마지막까지 사랑해 주셨듯 저도 우리 아이들 사랑으로 잘 키울게요.
아빠 사랑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