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심해져서 미안합니다.
예배 마치고 나가는 성도들과 인사하는 중에 “요즈음도 성경 잘 쓰고 있습니까?” 한 여집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성경타자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격려하는 요량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웃으며 지나칩니다. 당황해하는데 부목사님이 말해줍니다. “전번 주간에 부친이 돌아가셔서 못 나오셨습니다.” “아! 참 그랬었지” 그제야 제가 헛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몇 주 전에는 출산을 앞둔 젊은 여신도 한 분과 인사하다가 “예정일이 언제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합니다. “세 번째 물으시는 데요?” 우리 교회에는 임신한 여신도가 많아서 출산일을 다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분의 경우 몸이 약해서 늘 기도하고 있었던터라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막 떠오르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이미 두 번이나 물어봤다는 사실입니다. 당황되기도 하고 엉뚱한 말 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고맙게도 그 자매는 다시 한번 예정일을 말해주었습니다.
건망증이 심해지면서 안타까운 게 많습니다.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도 그렇고, 더 속상한 것은 가까운 분들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지고 순간적으로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그러니 무관심한 사람으로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물고기들은 기억력이 5초라는데 내가 물고기처럼 바보인가보다 생각하면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저 위로가 되는 것은 건망증 때문에 미운 것도 잊어버리고, 실수했거나 괴로웠던 일들도 사라져버려서, 과거의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거나 이전 일에 매여서 안절부절 못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전에 들은 얘기를 또 다시 반복해도, 별로 지루해하지 않고 처음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합니다. 다만, 건망증 때문에 무심한 사람, 무능한 일꾼 되지 않으려고 요즈음에는 메모를 많이 합니다. 약속을 펑크내면 안 되니까 약속하는 즉시 수첩에 기록해 놓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 중에는 몇 년 전의 설교나 예화도 다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싶습니다. 부탁드리기는 제가 말해놓고도 안했다고 하고, 말도 안 해놓고 했다고 우기면 정황증거를 대서 납득시켜 주시고, 한번 물은 것을 또 묻게 되면 그러려니 하고 다시 한번 답해 주셔서 건망증 때문에 낙제생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2010-01-30 19:0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