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소감문
♣ 아버지학교 교육에 참가하게 된 동기
예전부터 ‘두란노 아버지학교’가 있다는 것은 들어왔으나
내가 그 교육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그간 현재 강서아버지학교 지부장님으로 섬기고 계신 고원석 형제님이
아버지학교에서 교육받을 것을 수차례 권유 하셨지만
그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갔다.
‘아버지학교......, 왠지 모르게 좀 이상할 것 같고 분위기도 좀 그럴 것 같고
잘은 모르지만 암튼 나하고는 안 맞아’ 라고 생각했었다.
한편으로는 부족하기만 하였고, 가족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기에
나 스스로 변화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다른 집 아버지들은 나보다 더 못한 아버지들도 많을 텐데 뭐?
내 친구들 중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정도면...
‘그래 아직은 괜찮아?’ 이렇게 나 자신을 위로했었다.
그러던 차에 우리 발음교회에서 금번 아버지학교 강서43기가 개설 되었고,
이번에는 고원석 형제님이 강력하게 권유하셨기에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날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나 아버지학교 권유 받았는데 할까?” 하고 물었더니
아내가 “그래 한번 해봐” 라고 용기를 주었다.
내심 아내도 내가 달라지길 원했고
가정에 충실한 그런 아버지로 변화되길 원했었기에 반가운 기색이었다.
그렇게 확신을 갖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구나’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선교회 모임 자리에서 출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예비 아버지인 집사님도 아버지학교 교육에 참여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자기 멍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 태어나는 한 생명,
그 자녀를 위해 준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대단하게 여겨졌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 가정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해준 게 무엇인가?
‘그래 이번이 좋은 기회다.
나도 한번 바꾸어보자 어렵겠지만 노력해보자’ 그렇게 입학의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 아버지학교 첫 번째 교육(아버지의 영향력)
아무리 그래도 그토록 부담스럽기만 했던 아버지학교 1주차 교육이 시작되었고,
처음 만나는 아버지들과 조를 이루어 구호도 정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은 무척 더디게 지나갔던 것 같다.
교육시간 중에 아버지의 영향력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고,
나의 아버지에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조원형제님들과 각자의 아버지에 대하여 나눔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은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나오려 한다.
유난히도 추웠던 2013년 2월 8일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이었다.
저녁때 아버지댁에 들러 “아버지 나가서 같이 식사하시죠? 제가 사드릴게요.” 했더니
아버지께서는 “뭐 하러 돈쓰냐”며 손수 찌개를 끓여 음식을 차려 주셨다.
당신은 어머니 오시면 같이 드시겠다고 나 먹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셨던 아버지...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새벽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남기지 못하시고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과거에 우리가정을 돌보지 않았으며, 어머니와 우리형제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셨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려하셨던 아버지....
손녀 딸 수빈이가 질병으로 인해 몸이 불편하게 되자 누구보다도 슬퍼하시고 많이 우셨던 아버지...
살아생전에 “내가 우리 수빈이 꼭 고쳐주고 죽을 거야” 하셨던 아버지....
가끔 퇴근하고 아버지 집에 들 릴 때면 컴컴한 방에서 수빈이 때문에 마음아파
울고 계셨던 아버지...
어느 날은 하도 답답하고 막막해서 아버지를 붙잡고
“우리 수빈이 어떡해요. 불쌍해서 어떡해요. 나 자신 없어요. 힘들어요.” 하고
하소연 하듯 아버지를 붙잡고 울었는데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참으로 죄스럽기만 하다.
아버지께 존경의 말, 위로의 말,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하고 안아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하여 미루고 또 미루었더니
결국에는 내 속에 있는 생각과 마음을 전하지 못한 체 헤어지게 되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추운 겨울날씨 속에도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일을 나가셨던
아버지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이것이 마치 꿈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한 번도 이 말을 하지 못했네요. 정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말 또한 꼭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힘들어하지 마세요.
아버지 저 잘할 수 있어요.
우리 수빈이 잘 키울 수 있어요.
자신 있어요.
아버지에게 받은 그 사랑과 아버지의 희생 저도 자식들에게 전하며 살아갈게요.
이제 수빈이 걱정 그만 하시고 편히 계세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라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지만 보낼 곳이 없어 가슴이 많이 아팠다.
♣ 아버지학교 두 번째 교육(아버지의 남성)
아버지학교 두 번째 시간은 한층 부드러웠다.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즐겁고 유익한 수업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숙제가 있어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했다는 반성, 또 반성뿐이었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술만 먹고 들어오시면 어머니랑 매일 다투셨다.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처럼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수없이 다짐하였지만
무의식중에 그런 행동과 습관이 나왔다.
가정환경이란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마음으로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순간에 화를 참지 못하여
아내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빌었고,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달라지겠다고 다짐했다.
오랜만에 아내와 단둘이 영화도보고 저녁도 먹으며 데이트 하였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이런 시간을 자주 갖자며 무척 행복해했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며 좋아하는 아내에게 고마웠고
왜 진작 이런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을까 아쉽기도 했다.
♣ 아버지학교 세 번째 교육(아버지의 사명)
3주차교육 때 아이들에게 편지 쓰는 숙제에서도 반성 이었다.
그 편지 내용처럼 살면 정말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버지로 살 텐데...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알지 못했던 걸 배우게 되고,
아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결국에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아는 것을 실천하고 작은 것이라도 행동에 옮기는 삶을 배웠다.
매번하지는 못했지만 허깅도 하고 축복기도해주며,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고 할 때면
나 또한 축복받는 기분이었고 행복했다.
아직까지는 좀 어색하긴 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나아질 거라 생각하고
꼭 실천해 나갈 것이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며 내가 어릴 적
아버지가 나에게 또는 우리 가족들에게 했던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난 마음을 다잡았다.
‘아~ 내가 아버지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화내며 소리치면 무슨 소용이 있고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되어 화낼 일이 있더라도 참고 조용히 타일렀다.
그랬더니 나도 모르게 변화가 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으로 대하게 되고 짜증도 덜 내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퇴근 후 단 10분만이라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것만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꼭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 아버지학교 네 번째 교육(아버지의 영성)
하나님은 약하고 어리석은 나를 바로 세우시기를 원하셨는데,
난 자꾸만 주님과 멀어졌었다.
고통 중에 원망했고, 유혹 앞에 넘어졌고, 기도로 나아가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교회를 다녔고, 그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신앙생활을 해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 가족과 나를 사랑하시며 축복해 주신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이 있었지만,
주님이 함께해 주시고 은혜를 주셨기에 이 모든 일들이 지혜롭고 순조롭게
잘 지나간 것 같다.
사실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봉사)은 열심히 하였지만
진정한 믿음과 순종(헌신)은 부족했던 것 같다.
주님은 나에게 아버지로서 영적으로 많은 권세를 주셨건만
나는 그 권한으로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축복과 말씀으로 훈육하지 못하였고,
본이 되지 못하였다.
지금부터라도 아버지로서 영적권세를 바로 세워 축복하고, 말씀 가르치고,
훈육하고, 바른 신앙 전수하는 아버지로 나아가겠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아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무래도 우리 수빈이 와의 관계가
좋아진 것이 큰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수빈이 와의 관계에서는 좀 문제가 많았다.
수빈이가 어릴 적에 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일찍 결혼을 하여 어린나이에 수빈이를 낳아서 철이 많이 없었다.
가정을 잘 돌보지 못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치고 놀다가
새벽이 돼서야 집에 들어오곤 하였고, 무엇보다도 어린 수빈이와 놀아 주기는커녕
대화조차 필요한지도 몰랐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안아달라고 안길 때면 약간 귀찮다고 생각도 들곤 했다.
정말 무지했었다.
그래서일까 수빈이는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나중에 아무리 잘 해주려고 하고 관심 갖고
사랑으로 대해 주려하는데도 쉽게 관계가 회복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아버지학교 숙제라고 하며 억지로라도 안아주고(허깅)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라고 해주고, 머리에 손을 올리고 감각이 없는 다리를 붙잡고
그전보다 더 절실하게 그리고 진심을 다해 축보기도 해주며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서인지 수빈이와 많이 좋아졌다.
최근에 사춘기가 와서 늘 불만이 많고 신경질 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이 불편하니 짜증도 더 늘어 갔었는데,
그런 것들이 조금은 없어지고 그전보다 더 밝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기도하니 바꿔주시는 구나 그리고 아버지가 변화니까 아내도 변화고
자식들도 변하는구나.’ 나 하나만 바꾸면 이렇게 행복한 가정, 화목한 가정이 되는 것을
왜 진작 이렇게 기도하고 노력하지 못했을까?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으니 계속 노력하자.
그래서 나는 수빈이를 위해 오늘도 더욱 뜨겁게 축복기도를 해준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우리 수빈이에게는 뭐든지 더 잘 해주고 싶다.
“여호와는 수빈이에게 복을 주시고 수빈이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수빈이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수빈이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내를 위해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남겨주고 떠 날수 있을까?
지식, 돈, 집, 차, 이런 것들도 물론 좋을 수 있겠지만,
이것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내 자녀들을 위해 세상을 이기는 힘인 신앙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며 더 순종하고 헌신하며 나아가겠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서 내 사소한 모습, 습관, 행동하나라도
조심스럽게 하여야겠다.
“주님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아버지로서 바로 세워주시고 진정한 아버지로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하여 노력하게 하시고,
이 아버지학교를 통하여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시련과 유혹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도로 준비하며 나아가는
아버지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아버지학교 다섯 번째 교육(아버지와 가정) 수료식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처음으로 아내의 발을 만져보았다.
작고 연약한 발 그 발로 지금까지 나를 위해 아이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아내 나는 그 발을 만지며 가엾다는 생각에 눈물이 울컥했다.
그리고 그 발을 씻기며 나는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여보 미안해 당신의 작고 여린 발이 그토록 힘든 시간을 견뎌주었고
우리가족을 지탱해 주었어.
지금 내가 당신의 발을 씻기면서 지난 날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당신의 마음속에 응어리져있던 나의 잘못들도 함께 씻겨 나가주길 바라고 있어.
날 용서해줘. 그리고 고마워”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 날의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너무나 뜨거웠다.
그 순간만큼은 원 없이 울고 울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감동의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무언가 해냈다는 후련함도 있었다.
정말 행복했고, 지금까지의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자랑스러운 아버지학교 수료식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다.
아~! 드디어 나도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얻었구나.
♣ 글을 맺으며
아버지학교 수료증을 받았다고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부터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아버지학교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지 아니면
짧은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추억으로 남을지 이제는 내 몫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라는 교훈을 잊지 않고,
우리 가족들을 이끌어 나가는 아버지로서 사명 잘 감당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요즘 남자에게는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섯 가지로 남자의 때를 나 나름대로 정의해 보았고,
이때를 놓치면 힘든 삶의 연속이라고 생각해본다.
그 첫째로는 공부할 때(학교),
둘째 군대 갈 때,
셋째 장가 갈 때(결혼),
넷째 아버지가 될 때(출산),
마지막 다섯 째 아버지학교에 와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원하는 진정한 아버지로 변화될 때(아버지로서 자격을 얻을 때)
그 마지막 때를 놓치지 않고 이곳에서 교육받게 되고,
변화될 수 있게 기회를 주시고 중보기도 해주신 아버지학교 스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 아버지학교를 위해 헌신하시고 노력하시는 모든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고원석 형제님 또 우리 조장님으로 5주 동안 수고하신 서봉수 형제님,
4조 하나되어 조 형제님들, 강서 43기 모든 형제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정말 축복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우리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 4조 주경수 형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