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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길을 가는 아버지

청지기 2012-06-25 12년전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립과 갈등, 분열과 다툼일 것입니다. 남북대립, 지역분쟁, 노사갈등, 빈부의 격차, 세대갈등 등으로 양날을 세워 서로를 찢고 찢기며 갈라선 모습들을 볼 때 참담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가 첨예합니다. 화합을 이루어 상생의 길을 찾아가려는 몸부림은 미약하기만 합니다. 누가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무엇이 허구고 진리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 진실이 거짓을 진리가 허구를 몰아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보다 어둠에 더 익숙하고 매력을 느낀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진보가 보수를 품지 못하면 과격하고 폭력적이 됩니다. 보수가 진보를 품지 못하면 고루하고 무기력해집니다. 따라서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보수 속에 담겨 있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유연함’이고,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 속에 담겨 있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일 것입니다. 진정한 진보와 보수는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진보는 위선과 독선을 경계하고 보수는 고집과 아집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화합과 상생의 길은 먼저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변화하려는 의지와 철저한 실천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 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십시오!
  우리는 사회문제가 곧 가정의 문제이고 가정에서 시작된 갈등과 분열이 고스란히 사회로 흘러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 수 있는 단초가 가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아버지와 자녀가, 남편과 아내가, 형제와 자매가 서로를 외면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흩어지고 있습니다. 갈등 상황을 풀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천국이 아니라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서서 이 상황을 끝내야 하는데, 누가 하면 좋겠습니까? 대한민국 남성들 대부분은 ‘자존심’을 남성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서 남자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해를 이루어야 할 상황에서 자존심을 운운한다면, 그는 어떤 부분에서 자신이 얼마나 유약한 존재인지를 증명할 뿐입니다. 자존심은 그런데 쓰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강하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상대방의 입장 속으로 들어가서 그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은 결코 성숙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법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원칙입니다. 힘없는 사람이 손을 내밀면 구걸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족 가운데 아내나 자녀가 또는 형제 중 아우가 화해의 손을 내밀 때까지 죽어도 먼저 다가서지 않겠다는 아버지는 없으십니까? 기다리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여 화를 내고 아예 인연을 끊겠다는 분은 없습니까? 이는 갈등의 고리를 풀 수 있는 힘을 탕진하는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인간이 먼저 손 내밀기까지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셨고, 길을 여셨습니다. ‘땅 위의 아버지’는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신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때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 더 나아가 세계의 미래는 우리 자녀세대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부터 갈등과 분열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화해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미래는 그런 아이들이 이끌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 갈등과 화해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사소한 다툼이 모이고 쌓이면 분노로 치밀어 오르기 마련인데, 다툼이 있을 때마다 즉시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원칙을 지켜주십시오! 저는 월간「아버지」창간호부터 ‘지상강의’라는 코너를 통해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되기’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7월부터는 아내와 함께 ‘좋은 아내 되기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공동집필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무언가에 딱 꽂혀야 글이 써진다는 아내는 원고마감일에 임박해서야 초안을 보내왔습니다. 게다가 분량도 채 안 되는 초안을 보내올 때면 거기에 살을 붙이느라 제 살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하나의 글을 둘이 완성해 가면서 ‘이만큼 써내느라 얼마나 아내가 애를 썼을까!’ 하는 마음으로 “점점 글이 좋아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고 써봅시다.”라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격려하였습니다. 부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가운데는 반드시 갈등과 화해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갈등을 극복하면 행복해지겠지만, 억누르거나 회피한다면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당했나만 헤아리면 화해의 길을 열 수 없습니다. 또한 아내와 자녀들이 화해의 손을 거절할까봐 두려워하면 먼저 손 내밀 수 없습니다. 거절당해도 언젠가는 받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지속적으로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해의 길을 계속 걸으면 인격적 관계가 형성됩니다.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아버지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어쩌면 화해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뼈를 깍는 아픔의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입니다.

♠ 세상을 구원하는 화해의 길.
  사람은 인격적인 관계의 성숙과 성장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갈등상황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은 성숙한 관계의 훈련장이 됩니다. 갈등은 관계가 성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교사인 셈입니다. 몇 해 전에, 간디에 대한 글을 읽다가 탁월한 화해 비법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 인간관계가 깨지는 이유는 상대가 나를 무시하거나, 비난할 때입니다. 그런데 간디는 어떤 비난의 말들이 사실이라면, 그 말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앞으로 그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소리로 들으라는 것입니다. 전혀 근거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는 비난이라면 ‘Pass!(통과)’하면 그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무릎을 탁 치며 이를 삶에 적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들은 한가정의 리더입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리더로 산다는 것은 전쟁 가운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소리들을 더 많이 듣지만 그런 가운데서 늘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아버지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서 매일 산을 오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과 싸우면서 성숙해져 가면 그것으로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아버지 한 사람이 화해자로 살아가면, 우리 자녀들이 그것을 배웁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화해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열매요 희망입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보면서 ‘세상은 화해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로구나!’ 하고 느끼면, 그 자녀들은 사회에서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화해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은 사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정을 살리는 것은 물론 사회, 국가, 세계를 살리는 길입니다. 화해는 상생의 길이고 역사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입니다. 분열의 역사를 구원하는 길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내민 손의 의미가 이렇게 큽니다. 아버지가 아내에게, 자녀에게, 이웃에게 내민 화해의 손이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땅히 손을 내밀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내밀지 않겠습니까?

김성묵 / (사)두란노아버지학교 국제운동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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