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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만 가까이 있는 당신

청지기 2012-08-15 12년전  


여보! 규정 엄마!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8년하고도 9개월.
짧지만은 않은 세월 속에서 당신의 아들이 내년이면 벌써 중학교에 입학한다오.
당신이 보기에도 너무나 고맙게 컸지?
지금껏 아들과 살아온 세월 내가 말을 안 해도 당신은 알고 있을 거야.
긴 한숨과 허탈로 반 세월을 보냈고 눈물과 절망으로 남은 세월을 보내왔지.
술에 밥을 말아 먹을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하루하루였어.
남들이 뭐라 한들 난 당신에게 너무나 돌이키지 못할 죄인이라는 낙인이
늘 내 곁에 꼬리처럼 쫓아다니고 있지.
밥도 제대로 못했던 외동딸 당신을 차라리 당신의 부모께서 나에게 보내주지 않았던들
이런 아픔의 상처가 없었을 텐데.
당신 아들 규정이가 너무 잘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에겐 엄마의 자리가 필요한거야.
친구들에게 인기가 높아 회장 추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회장되면
자모회에 아빠가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탈퇴했는데도 나중에 표를 보니
자기 이름이 23표나 나왔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어.
순아! 굶고 살아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지만 차라리 9년 전 당신과 같이
이 힘든 세상을 등질걸 잘못했나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치를 느끼고 무책임했던 아빠의 모습을
이젠 더 보이지 말아야 할텐데 자신이 없을 때가 많아.
이제 훌쩍 커버린 당신의 사랑스런 아들이 못난 아빠에게 큰 위안이 되고 든든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옆에 있을 때 느꼈던 행복이라는 단어는 이제 나에게 없어.
처음에는 하나님조차도 무심한 것 같아 열심히 다녔던 교회도 안 나갔지만
그것은 나의 썩어버린 안일한 생각과 오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형제님, 자매님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는지.
서로 가슴으로 얼싸안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여기 계신 아버지들 모습에
난 그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어.
여보, 순아! 이제 한 겨울이 다가왔어.
한 쪽 날개를 잃은 듯 시름에 빠진 그런 모습은 이젠 보이지 않을래.
아마 당신도 이런 모습이 싫을 거야.
쏟아낼 눈물도 이젠 없어.
아직 40을 넘기지 않은 나이지만 백년은 산 것처럼 무수한 일들이 지나간 것 같아.
이제 우리 가정에 행복한 웃음만이 밀려올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당신 몫까지 아들에 대한 사랑은 걱정 말아.
당신도 편안하게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을 항상 보고 싶겠지.
당신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 말씀 좀 잘 드려봐. 우리 부자 행복하게 해달라고...
아마 하나님께서는 꼭 들어 주실거야.
귀엽고 예쁘고 착한 당신이니까.
퇴근하여 집 문을 열 때 바싹 마른 걸레를 보면서 짜증과 외로움이 밀려 술로 보냈던
시간들이 왜 이리 원망스러운지.
나 술 안 마실게.
다른 것은 다 없었는데 신혼여행에서 입었던 잠옷은 꼭 간직할게.
우리가 영원한 부부인 것을 아마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 거야.
못내 아쉬움이 당신과 나 사이에 남았지만 늘 내 곁에서 당신의 환한 미소가 있음에
다시 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보이진 않지만 당신은 항상 가까이에서 나와 당신 아들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이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베푸심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을 약속한다.
순아! 지난 일들을 용서바래.
떠날 때 내 손을 꼭 잡고 가는 당신이 무언가를 부탁하고 있다는 걸 난 다 안다.
당신의 부탁 꼭 지킬게.
거듭난 나의 모습을 당신의 밝은 미소로 맞이하여 주었으면 해.
사랑한다는 말보다 당신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어.
오늘도 너를 그리면서 나의 도리를 다하려 한다.
여보! 규정 엄마 잘 지내.
여보! 보고 싶다.
나도 곧 당신 곁에 갈 것을 약속하며 나와 규정이의 행복함을 늘 지켜봐 주길...

- 이OO 형제(평택 아버지학교) -

나다나엘 2012-09-23 (일) 02:41 12년전
가장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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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나엘 2012-09-23 (일) 03:21 12년전
청지기님의 글이 언제부터 우리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했나 하고 보았더니 6월 중순부터였네요
그간 제가 좀 게을러서 홈피를 열지 못했는데요 너무 많은글을 한번에 보려하니 시간이 부족하네요
차츰 다 읽어  볼 것입니다. 근데 저는 어느 목사님인지 모르겠고... 여튼 잘 보고 있읍니다
감사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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